대를 잇는 연세경영 가족 I. 장인 최기종(상과 43)·사위 신문영(상학 67)
연세경영은 100주년을 맞아 ‘대를 잇는 연세경영 가족 찾기’ 사업을 진행 중이다. 연세경영 100년의 역사 속에서 대를 이어 연세경영과 함께 한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. 그 첫 번째 순서로 장인과 사위로 대를 잇는 연세경영 가족이 된 최기종(상과 43, 이하 최), 신문영(상학 67, 이하 신) 가족을 만나보았다. Q) 두 분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.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? 최) 저는 일제 강점기인 1943년에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일제의 학도지원병 동원대상자가 되었어요. 이에 만주로 피신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징용훈련과 강제노역이 기다리고 있었어요. 그렇게 혹독한 세월을 보낸 후, 광복으로 풀려나 그 해 11월에 개교한 학교로 복학하였습니다. 일제의 강압으로 교명이 변경되는 등 설움을 겪은 모교가 이듬해인 1946년 8월 연희대학교로 승격하기 전 마지막 연희전문학교 상과의 졸업생이 되었습니다. 신) 저는 1967년 상학과로 입학하였습니다. 상학과 마지막 입학이 1968년이이니 상학사로는 거의마지막 졸업생인 셈입니다. 당시 240명 입학생 중 여학생이 3명이었는데 예년에 비해 숫자가 많이 늘었다고 ‘여학생 홍수가 났다’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. 지금 경영학과의 여학생 비율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. [ 좌측부터 신문영(상학 67), 최기종(상과 43)] Q) 신 동문은 결혼하실 때, 연세경영 동문이어서 결혼 승낙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신) 당연히 도움이 되었죠. 연세대 동문이고 그것도 같은 과의 동문일 뿐 아니라 장인어르신의 연전 동기생들이 학교에 교수로 재직하고 계셨기 때문에 공통화제가 많았습니다. 노천극장 개축공사를 할 때 기증자의 이름을 표기한 의자를 장인어른께 선물해 드렸는데 매우 흐뭇해 하셨습니다. Q)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모교와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. 최) 해방 전의 연희캠퍼스는 언더우드 동상이 있는 정원을 중심으로 위치한 디귿(ㄷ)자 모양으로 위치한 건물 세 채가 전부였는데, 요즈음의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, 우리의 땅에서, 우리의 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. 후배들이 연세 상학 100년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깊이 되새기고, 선진국 명문 사학의 역사와 겨룰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연세인이 되기를 바랍니다. 신) 재학시절 연세춘추 기자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전용 가로편집의 신문을 제작했습니다. 연세춘추가 선도한 개혁이 훗날 우리나라 모든 일간신문들의 편집체제를 바꾸는 것을 목격했습니다. 이 경험을 통해 대학이 사회의 선도적이고 지도적 역할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. 연세인으로서 세계와 국가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연세경영 100년을 맞이하여 새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.